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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제주도 전통 감물염색과 도중잡영
등록날짜 [ 2022년08월05일 12시08분 ]
[패션저널&텍스타일라이프:허북구 나주시천연염색문화재단 국장]우리나라는 기록의 민족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조선시대 왕의 명령을 전달하던 승정원에서 매일매일 취급한 문서와 사건을 기록한 승정원기는 현재 1623년부터 1894년까지의 기록이 남아있다. 그것만을 보면 가히 기록의 민족이라고도 할 수 있으나 조선 시대까지의 감물염색에 대한 기록물은 거의 찾아보기가 힘들다.
 
현재 우리나라 감물염색의 기원에 대해서는 『탐라성주유사(耽羅星主遺事)』, 『제주도사론고(濟州道史論攷)』등에 의하면 고려 말에 중국 운남성(雲南省)의 묘족(苗族)에 의해 전해진 것 같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중 『탐라성주유사(耽羅星主遺事)』는 1979년에 탐라성주유사편찬위원회(耽羅星主遺事編纂委員會)에서 편찬하여 제주 고씨종문회총본부가 발행한 것이다. 『제주도사론고(濟州道史論攷)』는 김태능이 저술하여 1982년에 세기문화사에서 발행된 것으로 고려시대의 기록물이 아니다.

또한 묘족과 감물염색에 관한 중국의 기록물이 있는 것도 아니며, 묘족은 다른 종족에 비해 1,000년 전의 고유문화를 지금까지도 전승해오고 있는 것들이 많은데, 감물염색 문화는 유습에서 찾을 수가 없다. 
 
중국에서는 묘족뿐만 아니라 중국 명시대 말(1596)의 “본초강목(本草綱目)”에 “감을 파쇄한 즙에 담근다.

이것을 시칠(감즙으로 칠하는 것)이라고 한다”는 대목이 있듯이 시칠에 관한 기록은 다수 있으나 감물염색에 대한 기록은 찾기가 어려워 제주도 감물염색이 운남성 사람들에 의해 전래되었다는 설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일본에서 시칠(漆)이 문헌에 처음 기재된 것은 10세기경이다. 그 시기에는 나무로 만든 불상(木佛)과 목가구(木家具) 등에 옻칠을 하기 앞서 밑칠용으로 감물이 쓰였다는 기록들이 있다.

평안시대(平安時代; 794-1192년)에는 불교가 전파되면서 절에서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 입었던 옷이나 산속에서 기거하면서도 수도(修道)하는 사람들이 감물염색 옷을 입었다는 기록이 있다. 
 
일본의 불교는 백제 등을 통해 전해졌고, 백제, 고구려에서 넘어간 승려들이 활동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에서 감물염색을 전했을 수도 있다는 점을 배제할 수 없다. 그 사용 시기는 제주도 감물염색이 운남성(雲南省) 사람들에 의해 전해졌다는 시기보다 앞선다.

또한 아시아의 많은 나라의 해안지역에서는 감물을 비롯해 타닌을 함유한 식물 추출물로 그물과 낚시 줄을 염색했던 오래된 문화가 있으므로 제주도 감물염색 문화는 제주도 자연 발생설이 더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되나 기록이 없으므로 이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실정이다.
 
우리나라 감물염색 역사 기록은 이처럼 거의 없는 가운데, 조선 후기 실학자 서유구(1764-1845)가 1835년 경 펴낸 농업 백과전서 격인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에는 감물염색이 살짝 언급되어 있다.

그 내용은 “익지 않은 두시의 꼭지를 제거하고 그릇에 넣고 물을 붓고 절굿공이로 찧어 통에 옮겨 하룻밤 재운다. 다음날 즙을 짜내고 남은 찌꺼기에 다시 물을 붓고 이틀 후에 즙을 짜낸다. 여름에는 저장하기 어려우니 가지를 썰어 담는다”라는 내용이 있다.
 
이 보다 앞선 기록에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포암(圃巖) 윤봉조(尹鳳朝, 1680-1761)가 제주도에 유배를 가서 그곳에서 본 것에 대해 시로 읊은 시문집인 『포암집(圃巖集)』의 도중잡영(島中雜詠)에 한 문장이 서술되어 있다. 
 
포암집(圃巖集)의 도중잡영(島中雜詠)의 10번째(其十) 시에는 "林不防虎(임와불방호): 숲에 누워 있어도 호랑이 걱정 없고. 戶開不警盜(호개불경도): 문 열려 있어도 도둑 경계 필요 없네. 牧兒驅牛去(목아구우거): 목동은 소 몰고 떠나갔는데, 嘯聲夜四到(소성야사도): 휘파람 소리만 밤에 서너 차례 들려오네. 寒風振哀壑(한풍진애학): 싸늘한 바람이 구슬프게 골짜기에 불어오는데, 村徑葉不掃(촌경엽불소): 마을길은 낙엽 쌓여도 쓸지 않네. 凌雨染衣(릉우시염의): 장맛비 올 때는 감으로 옷에 물들이고. 冒雪皮爲帽(모설피위모): 추운 겨울에는 가죽으로 모자를 만드네. 牛肥載薪多(우비재신다): 살찐 소 땔나무 많이 실어 歸及夜(귀급설야조): 돌아와 아궁이에 불이나 때어야겠네. 
 
今夜善飼牛(금야선사우): 이 밤 소나 잘 먹여 秋稼滿畦倒(추가만휴도): 가을 벼 논 두둑 가득 하겠네. 田家歲功成(전가세공성): 농가 한해 농사 이루었으니, 喜色動相告(희색동상고): 기쁜 얼굴빛에 서로 알리겠지. 獨有離家客(독유리가객): 홀로 집 떠난 객이 되어 眼穿望鄕耗(안천망향모): 눈은 뚫어져라 고향을 바라보네. 滿目非我故(만목비아고): 가득 보이는 풍경, 내 고향 아니니, 歸心旌纛(귀심뇨정독): 돌아가고픈 마음 깃발처럼 나부끼네"로 구성되어 있다.
 
위의 시 중에 “장맛비 올 때는 감으로 옷에 물들이고(凌雨染衣)”라는 대목이 있다.

시의 문맥상 장맛비는 여름철을 의미하는 것으로 제주도에서는 여름철에 감물염색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나라의 감물염색에 대한 고문헌은 이처럼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가운데, 제주도 감물염색에 관한 것이 많다.

도중잡영처럼 시 문장에 제주도의 풍경으로 등장하는 제주도 전통 감물염색은 제주도를 더욱더 제주도답게 만드는 제주도의 전통문화라는 점에서 감물염색 관련 문헌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활용하길 바란다. 
(패션저널&텍스타일라이프 ⓒ www.okfashi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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