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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독일 뮌헨, 드레스덴 취재기(2007)
등록날짜 [ 2007년06월09일 00시00분 ]

Der Furstenzug (Procession of Princes) 군주의 행렬 벽화가 유명한 드레스덴 도시 중심가

-독일에 도착하던날 뮌헨 공항은 어두웠고 날씨도 서울 보다 더 추웠다. 우리 일행은 인천 공항을 출발한지 13시간 여 만에 독일 뮌헨에 내렸다. 프랑크푸르트를 경유한 코스였다. 인천 공항에서 프랑크푸르트 공항까지 대한항공을 이용했지만 뮌헨까지는 루프트한자로 바꿨다.

루프트한자(lufthansa) 비행기 안에서 한국인 젊은이를 만났다. 내 옆 자리에 그가 앉았다. IT 전문기업에 다니는 신입사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합작회사에 업무협의차 간다며 숙소를 정하지 않아 뮌헨에 내려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 세계를 누비며 돈을 벌어 들이는 유능한 젊은이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 비하면 우리(기자들)는 정말 호사스런 여행이다. 통역에다 현지 사정이 밝은 안내자(가이드)가 마련해 준 항공 티겟, 공항에 대기하고 있는 차량과 특급호텔 숙박까지 모든게 타인에 의해 준비된 여행이기 때문이다.

젊은이와 잠깐 얘기를 나누는 사이 비행기는 우리들을 뮌헨에 내려 놓았다. 바커 본사에서 미니 버스가 나와 있었다. 버스는 우리들을 태우고 아우토반(속도 무제한 고속도로)을 빠르게 달렸다.

속도가 무제한이라고 해서 유명해진 독일의 고속도로 아우토반이였다. 질주하는 차량들의 속도가 우리나라 고속도로 보다 빠른 것 같았다. 그러나 무제한 고속도로라고 해서 속도 제한이 없는 것은 아니였다. 곳곳에 속도를 제한 하는 표시도 보였다. 아우토반은 속도를 제한하는 구간과 무제한 구간이 정해져 있었다.

속도 제한이 없으니 광폭하게 내달리는 차가 있을 법도 했지만 눈에 띄지 않았다. 한국의 자유로를 달릴 때 미친듯 경적을 울리며 달리는 폭주족 같은 차량도 발견할 수 없었다. 뮌헨시 외각을 돌아 힐튼호텔에 도착했다.

해가 지고 어두워 도시의 야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짐을 내려놓고 바로 부페 식당으로 가 저녁을 먹었다. 

뮌헨의 전통 음식인 돼지족발(아이스바인/독일어: Eisbein)을 꼭 먹어 보라는 권유에 족발 하나를 통채로 집어 들었다. 물컹하게 삶은 우족발 처럼 보였다. '독일인도 이렇게 해서 돼지 족발을 먹는구나'. 하면서 돼지족발에다 맥주, 소시지를 곁들여 저녁 식사를 해결했다.

저녁 식사 후 뮌헨의 야경을 감상하며 밤 늦도록 밀린 업무를 처리했다. 메일을 점검하고 아이들과 인터넷 화상 통화도 했다. 나에게 있어 여행도 이제 쉬는 것이 아니다. 인터넷이란 괴물(?)이 등장 하면서 세계 어디에서든 업무를 들고가 처리할 수 있기 때문에 일도 항상 따라 다니게 됐다.

특히 사진 찍고 글을 써야하는 언론인들은 더욱 일에 노예가 된다. 장점이 있는 반면 단점도 있다. 그러나 인터넷은 언론인들에겐 장점이 더 많은 도구로 느껴진다.

지구 반바퀴를 돌아온 나라에서 불편없이 업무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이 시대에 태어난 세대들에겐 큰 행운이 아닐까? 인터넷은 우리들의 삶을 너무 편하게 해 버렸다. 반면에 무분별한 카피와 비방(댓글), 사생활이 위협받는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이런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은 이제 없어서는 안될 필수 도구가 됐고 우리들을 중독시켰다.

뮌헨에서의 첫 밤은 짧았다. 잠을 설쳤기 때문이다. 아침 식사 역시 같은 장소에서 해결했다.  EBN뉴스 손병문 기자와 함께 정원이 보이는 창가에서 아침을 먹었다. 처음 보는 생선 요리(롤몹스:Rollmops)를 놓고 고개를 갸웃하고 있을 때 친절한 독일인 여성이 다가와 자세하게 설명을  해 주었다. 한참 음식을 먹고 있는데 창 밖으로 눈이 내리고 있었다. 뮌헨에 이미 봄이 왔는데 눈이라니...

뮌헨의 춘설이였다. 매화 꽃잎 같은 함박눈이 펑펑 내렸다. 우리가 뮌헨에 온 것을 축하라도 하듯...기온 탓인지 눈은 내리자 마자 녹아 내렸다. 한참 동안 내리는 눈을 바라 보며 감상에 젖었다. 먼 이국 땅에서 느끼는 여행의 야릇한 희열을 맛 보며 한동안 넋나간 사람처럼 거리를 주시한 채 앉아 있었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뮌헨 도심을 가로질러 바커케미칼 본사에 도착했다. 깨끗하게 정돈된 현관과 사무공간이 한눈에 들어왔다. 바커 본사 임직원들의 환영 인사를 받으며 기자 회견장으로 들어갔다. 바커그룹의 핵심 임원진들이 모두 참석했다. 2006년도 실적 자료가 발표됐다. 역시 유럽식으로 기자회견이 진행됐다. 유럽 기업들은 긴 설명이 담긴 페이퍼 자료를 주고 일방적으로 설명하는 식의 회견이 주류를 이룬다.

질문은 몇개 정도 밖에 받지 않는다. 바커케미칼 기자 회견도 비슷했다. 기자 회견이 끝나고 휴식시간에 자유롭게 취재기회가 주어졌다. 복도에는 약간의 간식과 커피 등이 제공됐다. 음식과 과일 커피 등이 항상 따라다니며 푸짐하게 나왔다. 의식주가 풍부한 선진국 독일 사람들이 매번 이렇게 먹고 있으니 비만이 양산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제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하에서도 앞에 놓여진 음식을 거부하지 못하는 탓에 나 역시 비만 대열에 빠지지 않고 있다. 한국 역시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 서 있어 먹는 것의 자유방임 시대가 됐다.

나는 바커케미칼 아.태 담당 회장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 후 국제 기자단을 대상으로 세미나가 진행됐다. 세미나는 실리콘과 관련된 전문적인 내용이 주류를 이루었다. 국제 기자단은 모두 진지하게 강사의 강의를 들었다. 나는 노트북를 켜 놓고 기사를 작성하며 강의를 들으려 했으나 분위기가 너무 진지해 노트북을 켤 수가 없었다.

시간이 지난면서 가끔 하품하는 기자도 있었지만 대체로 모두 진지했다. 졸음이 몰려와도 이런 분위기에서는 용납될 것 같지 않았다. 나는 커피를 계속 마시며 졸음을 이겨 냈다. 실리콘이 섬유가공에 많이 사용되기는 하지만 화학 쪽에 가까워 난해한 전문 내용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세미나가 끝나고 우리는 버스를 타고 뮌헨공항으로 다시 갔다. 그곳에서 드레스덴[Dresden]으로 들어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였다.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해가 진 늦은 저녁무렵 이였다. 드레스덴으로 들어가는 비행기는 생각보다 작은 미니급 이였다.

날씨는 비가 내릴 것 처럼 잔뜩 흐려 있었다. 낡고 작은 비행기를 타면서 느끼는 공포감이 다시 느껴졌다. 과거 런던에서 이탈리아를 갈때 탔던 알리딸리아항공의 악몽이 머리를 스쳐갔다. 비행기는 많이 흔들렸다. 바람이 불고 비도 세차게 내렸다. 갑자기 공포감이 엄습했다.

드레스덴에 무사히 갈 수 있을까? 그렇게 고풍스럽다는 드레스덴에 가지 못하고 추락하는게 아닐까?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비행기가 너무 흔들렸기 때문이였다.


드레스덴 공항에 착륙하기 전까지 이런 공포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비행기는 1시간 가량 날아 드레스덴에 착륙했다. 드레스덴 공항에서 바라본 야경은 무척 아름다웠다. 언제 비가 왔냐는듯 드레스덴의 날씨는 청명하고 산뜻했다. 시골에 온 것 처럼 상큼한 풀냄새가 다가왔다. 구 동독의 주요도시로만 알고 있었던 드레스덴에 첫 발을 디뎠다.

드레스덴 공항은 독일 통일 후 새로 지어졌다. 그래서인지 공항은 현대식 건물들이 들어서 깨끗했다. 버스를 타고 드레스덴 도심지에 소재한 힐튼호텔로 갔다. 고풍스러운 옛 건물들 사이로 은은한 불빛들이 화려한 옛 도시의 과거를 말해 주고 있었다.

유럽 특유의 고풍스러운 경치가 한 눈에 들어 왔다. 현대적인 건축물 보다는 과거의 고전미를 그대로 보존해 나가려는 게르만인들의 예술적 감각이 드레스덴에 그대로 녹아 있었다.

히틀러가 독재를 하면서도 예술을 아끼고 즐겼다고 하니 그럴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갑자기 히틀러가 떠올랐을까? 히틀러도 이 드레스덴의 고풍스러운 거리를 산책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드레스덴은 도시 전체가 문화재 처럼 보였다. 그런데 건축물 대부분이 2차 대전 당시 파괴된 것을 다시 복원 했다고 한다. 통일 후에도 독일인들은 드레스덴에 대규모 자본을 투입 도시 복원을 진행 했다. 자본주의 체제의 서독 중심으로 통일이 됐지만 동-서를 차별하지 않겠다는 독일인, 게르만 민족의 저력이 느껴졌다.

호텔에 들어와 짐을 풀었다. 호텔 안은 현대식이였다. 오히려 뮌헨의 호텔보다 시설은 더 좋았다. 관념적으로만 생각했던 동독과 서독의 경계가 호텔은 물론 도시 외관에서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휴식후 우리는 저녁 만찬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저녁 만찬은 호텔 인근에 위치한 독일 전통 음식점이였다. 역시 부페였다. 와인에다 독일 맥주를 마시며 저녁 식사를 했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우리 일행은 다시 호텔 인근의 카페로 갔다. 그곳에서 한국인들끼리 호프를 한잔 하기 위해서였다. 여행에서 느끼는 행복한 찰라의 순간을 모두들 잊지 못할 것 같은 밤이였다.

아침에 일어나니 드레스덴의 맑은 공기와 강렬한 햇살이 창문을 타고 들어왔다. 아침식사 전 손기자와 나는 호기심에 호텔 사우나장을 들렀다. 듣던대로 남녀 혼탕이였다. 우리는 독일 아저씨, 아주머니들과 사우나를 같이 하며 동양인의 알몸을 제공했다.

사우나 후 아침식사를 마치고 잠시 거리를 산책했다. 고풍스러운 드레스덴의 경치를 즐기며 혼자만의 사색에 잠길 수 있었다. 호텔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드레스덴 인근에 소재한 [뉜크리츠] 바커케미칼 실리콘 제조 공장을 향해 달렸다. 도심지를 빠져나오니 전형적인 독일 농촌이 한눈에 들어왔다. 잘 정돈된 들판과 아기자기한 시골집들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다.

조용하고 한적한 시골풍경이 인상적이였다. 너무 한적해 사람들이 살 것 같지 않아 보였다. 1995년 이탈리아 밀라노를 거쳐 스위스로 들어가면서 본 알프스 지역의 농촌 풍경이 스쳐갔다. 조용하고 한적한 농촌 도로를 1시간 가량 달리니 엘베강이 한눈에 들어왔다.


강은 초록빛이였다. 강 주변을 에워싼 정글같은 나무 숲이 보였다. 나무와 풀이 강물에 비쳐 물빛이 초록으로 보이는 것 같았다. 작은 1차선 길로 들어가니 바커케미칼의 웅장한 공장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바커케미칼 뉜크리츠 공장 전경(바커 제공)

여러조로 나눠 공장의 이곳저곳을 둘러 보았다. 오전 스케줄은 모두 공장 투어였다. 

공장 투어 후 바커 임직원들과 기념촬영, 기념품 전달 같은 공식 행사를 모두 마치고 다시 드레스덴 중심지로 이동 했다. 호텔로 가 잠시 옷을 갈아 입은 후 점심식사를 했다. 식사후 도시투어가 있었다. 

시차 때문에 졸음이 몰려 왔다. 도시 투어 보다 나는 잠을 택했다. 빡빡한 일정에다 예민한 성격 탓에 시차를 극복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였다. 그래서 아름다운 드레스덴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저녁이 되자 마지막 만찬이 준비돼 있었다.  호텔을 나와 걸어서 드레스덴에서 유명하다는 동굴 식당으로 발길을 옮겼다. 중세의 성처럼 생긴 동굴안에 음식점이 있었다. 음식점 문 앞에는 고대 병사의 복장을 한 이가 칼과 창을 든 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민속 음식점 같은 곳이였다. 그 음식점에서 양고기와 쇠고기, 해물 같은 요리가 나왔다. 다 기억나지 않는 독일 전통 요리들이 제공됐다. 음식점 내부는 어두었지만 운치있는 곳이였다.

함께 참여했던 기자들간에 사진 촬영이 있었고 자유 토론도 이어졌다. 우리 일행은 이곳에서 4박 5일간 뮌헨, 드레스덴 여행을 정리하며 마지막 밤을 보냈다.(조영준의 여행 다이어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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