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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제주도 감물 염색에 관한 명칭
등록날짜 [ 2023년01월26일 09시02분 ]

[패션저널&텍스타일라이프:허북구 나주시천연염색문화재단 국장]우리나라에서는 미숙감(풋감)의 즙액을 내어 천 등에 흡수시켜서 발색시키는 것에 대해 감물염색이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한다.

이것을 한자(漢字)로 번역하면 시즙염색(枾汁染色)이어서 필자는 2015년 대만에서 감물염색 단행본 출판 시에 『枾汁染色的理論與實際(감물염색의 이론과 실제)』라는 책 제목을 사용했다.
 
그 당시 책을 출판하고 나서 대만의 독자들로부터 중국어로 많이 사용되는 감염색(枾染 또는 枾子染) 또는 시칠(枾漆) 염색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왜 시즙염색(枾汁染色)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느냐에 대해 질문받고, 한국의 감물염색을 번역한 것이라는 대답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얼마 전 제주도 독자로부터 “‘제주도 감물염색’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감물염색이라는 용어가 어떻게 해서 유래되었는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러한 질문의 배경에는 감물염색의 결과물에 대해 갈적삼, 갈중이, 갈굴중이 등 갈옷 이름과도 관련이 있었다.
 
제주도에서는 감물염색 천을 갈천, 감물염색 옷을 갈옷이라고 하는데, 염색은 왜 감물염색이라고 하는가라는 의문이 작용한 것이었다.

그러한 의문이 생길만한 것에는 감의 어원이 갈이라는 주장이 있고(허북구, 박석근. 2004. 재미있는 우리 나무 이름의 유래를 찾아서. 중앙생활사), 1935년에 발간된 코노사카에(兒野榮)의『조선의 산 열매와 산나물(朝鮮の山果と山菜)』에는 “감나무(枾)나 감의 유래는 ‘가래(嘉來)’이다.”라는 내용이 있다.
 
그래서 감물염색과 관련된 용어를 찾아보니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포암(圃巖) 윤봉조(尹鳳朝, 1680-1761)가 제주도로 유배를 와서 본 것을 시로 읊은 시문집인 『포암집(圃巖集)』의 도중잡영(島中雜詠)에는 ‘릉우시염의(凌雨枾染衣)’이라고 해서 시염(枾染)으로 표기되어 있었다(허북구, 박지혜. 2013. 근대 제주도의 감 문화와 감물염색. 세오와 이재).
 
조선 후기 실학자 최한기(崔漢綺)가 1830년대에 편찬한 종합 농업기술서인 『농정회요(農政會要)』에는 “맛은 달아서 날로 먹을 만하며, 찧어 부수어서 즙에 담그는 것을 시칠(枾漆)이라고 일컫는데 어망이나 부채(扇) 등의 물건을 염색할 수 있다(味甘可生啖搗碎浸汁 謂之枾漆 可染0扇諸物).”라는 대목이 있는데, 이것에는 시칠(枾漆)로 쓰여 있다.
 
시칠(枾漆)은 1924년 8월 19일자 동아일보 권덕규의 제주행(濟州行) 팔(八)의 “風俗(풍속)에 夏衣(하의)를 枾漆(시칠)에 染(염)하야 衣(의)하는 故(고)로 감을 食用(식용)에 供(공)하는 일은 매우 드물다.”라는 문장에도 사용되었다.

시칠(枾漆)은 이후 1938년 9월 16일자 동아일보의 ‘單寧原料確保(단녕원요확보)는 枾實(시실)로 되는 枾漆(시칠)도 充分(충분)’이라는 기사에 사용된 이후 찾아보기 힘들다.
 
1920년대 중반 이후 시염(枾染)과 시칠(枾漆)의 사용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된데 비해 신문 기사에는 감물이라는 용어가 자주 사용되었다. 1924년 8월 27일자 동아일보 김덕규(金悳奎)의‘제주행(16) ‘제주의 민거’에는 “제주에는 아직도 제주 물색이 남아있다.

이 물색은 오색(五色)이나 칠색(七色)에 들지 않는 감물이다.”라는 문장이 있다. 같은 신문 1924년 8월 29일 김덕규(金悳奎)의‘제주행(18)’에는 “(농)군이 감물들인 잠빵능걸이에”라는 문장이 있다. 
 
이 외에 조선일보 1924년 12월 28일의 ‘부인 상식’에는 “감물가튼 것은 흰 설탕을 뿌려두엇다가 물에 빨 것 이올시다.”라는 내용이 있고, 동아일보 1930년 11월 19일지 ‘세탁 강습회에서 강의들은 대로(四, 사)’에는 “감물 카피 무든 것. 빗갈 잇는 것은 초산(醋酸, 초산) 십배액(液, 액)으로 빱니다.”라는 내용이 있다.

조선일보 1935년 8월 9일자 ‘생활 해전 종군기, 칠 제주도G 해녀편’에서는 “일 할 때에는 무명이나 베에 감물을 벌거케 물드린 이 섬특유의 로동제복”이라는 문장이 있다. 이들 문장에서는 ‘감물’이 한자(漢字)의 사용없이 단독으로 사용되었다. 
 
1920년대 후반에는 감물과 함께 사용된 것이 일본에서 감물염색에 사용되는 감물을 뜻하는 단어로 명명된 枾澁(시삽)이라는 단어가 신문 기사에 사용되기도 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1928년 10월 16일자 동아일보의 ‘枾澁生産百餘名(시삽 생산 백여명)’이라는 기사, 조선일보 1935년 10월 일자의 ‘枾澁製造法如何(시삽제조법여하)’ 기사, 그리고 1946년 12월 20일자의 동아일보 칼럼 ‘보고 제주도 시찰기(寶庫 濟州道 視察記)’에 “수직(手織) 면포(綿布)에 시삽염료(枾澁染料)로 물드린 활동적인 작업복”이라는 내용이 있다. 
 
시삽(枾澁)은 1935년 8월 16일자 동아일보의 ‘생활 해전 종군기 13, 강화도 민어잡이B’에서는 “그물에다 감물(澁枾, 삽시)을 들이여”문장처럼 ‘감물’과 ‘삽시(澁枾)’로 표현한 것이 있다.

감물을 한자로 시즙(枾汁)으로 표현한 것도 있는데, 1938년 8월 28일자 조선일보 ‘海邊風情記(해변풍정기)’에 “적삼과 치마를 지어 입되 떨분 감물(枾汁, 시즙)을 물들여”라는 대목이 그것이다.
 
감물염색과 제주도 감물염색 명칭은 위와 같이 다양하게 사용되었고, 일제강점기 때는 일본식 용어인 ‘枾澁(시삽)’이 신문 기사 등에 사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제주도에서는 시삽(澁?)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지 않았으며,  우리나라식 표현인 ‘감물’과 ‘들인다’ 또는 ‘들인다’의 한자 표현인 ‘염색’이 최소한 100년 이상 사용되어 왔다. 
(패션저널&텍스타일라이프 ⓒ www.okfashi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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