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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세이-아프리카에서 30일,사랑과 희망을 보았다
등록날짜 [ 2019년10월16일 16시22분 ]

[패션저널&텍스타일라이프:이승도 아이티포커스 대표기자]2018년 80일간 러시아 캄차카반도와 시베리아횡단 열차여행, 유럽과 북유럽, 티벳, 남미여행을 거쳐 아프리카여행으로 마무리하려고 했는데 여러 가지 사정으로 아프리카 여행을 마치지 못해 아프리카를 동경해 왔었다.

그러던 차에 여행사업을 하게 됐고 그 일환으로 그리스 요트여행과 함께 아프리카 여행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30일간 아프리카 여행이 시작했다.

아프리카의 첫 방문 국가인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의 국립박물관을 먼저 방문하였다. 공항에 내려 택시를 타고가면서 본 아디스아바바 거리는 에티오피아의 수도라고 보기에는 너무 초라하고 보잘 것 없었다.

신기한 광경을 보고 사진을 찍으면 사진속의 사람들이 달려와 돈을 달라고 했다. 소위 모델료를 달라는 것이였다. 거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배가 고픈 표정을 지으며 돈을 구걸했다. 모든 것이 나를 힘들게 했다. 천당에서 지옥으로 온 느낌이었다. 

지난 그리스 요트여행과 두바이 여행을 한 것이 부끄럽게 느껴지고 창피했다. 더 이상 여행하고 싶은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에티오피아는 식민지 지배를 받지 않았기에 그럴듯한 유럽식 건물도 없었다.  모든 건물들이 볼품없고 초라했다.

국립박물관이라고 해서 찾아갔는데 지방의 조그만 학교 교사보다 못한 시설과 초라한 유물보관함이 눈에 들어왔다. 한국전 참전기념공원은 거의 방치된 것 같았지만 쿠바전 참전기념비는 시내 중앙에 위치해 많은 사람들이 운집해 있었다.

이틀이 지난 뒤에야 나는 여행자의 자세로 돌아왔다. 케냐의 나이로비를 거쳐 탄자니아의 수도 다스에르 살람에 도착했다. 선하게 생긴 택시기사의 도움으로 호텔에 짐을 풀고 대화가 불가능하지만 식사를 같이 하자고했다. 

탄자니아인들이 즐겨찾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싶어 택시기사에게 저녁식사를 대접했다. 다음날 탄자니아 다스에르 살람에서 잠비아 루사카까지 가는 타자라 기차를 탔다. 

타자라는 1800키로미터 길이로 중국이 사회주의를 전파하기 위해 50년 전에 기증한 철도로 인도양 해변에서 아프리카 중앙까지 연결하기 위한 유일한 철도였다. 

철도 역사 뿐만 아니라 객차도 중국이 기증했다고 홍보돼 있었다. 2박3일의 기차여행이였는데 1등석이 매진돼 6명이 이용하는 2등석을 구입해 여행을 시작했다.  6명이 다 들어오니 좁은 방이 꽉 찼다.

더구나 나는 3층 침대에 자리가 배정돼 올라 가기도 힘들었다.  식당을 오가며 그리고 기차의 중간에 있는 바에서 맥주를 마시며 시간을 보냈는데 바와 식당에는 아프리카 원주민들만 있었다.

기차가 정차할 때는 많은 주민들이 모여들어 빵과 과일을 팔고 있었다. 그런데 새벽에 기차가 장시간 움직이지 않아 밖으로 나갔는데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다가가니 기차가 탈선해 있었다.

기차가 언덕 위 곡선구간을 지나고 있었고 다리를 지나기 직전에 정차해 있었다. 상당히 위험한 상황에서 정차된 것이였다.

이어서 인근의 수많은 주민들이 모여들었다. 운동화를 신고도 걷기 힘든 자갈길을 헤어진 옷을 입은 어린 아이들이 맨발로 걸어오면서 먹을 것을 달라고 애원했다. 

나는 몇일 동안 먹을 음식을 구입했기에 통조림과 과자들을 주었지만 결국 덩치 큰 아이들의 차지였다. 그들을 보는 나의 가슴은 울고 있었다.     
 

       

기차내 바에서 맥주를 마시며 아프리카의 젊은이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이 부러워하는 한국도 50여년 전 미군들을 따라다니며 초코렛을 달라고 매달리곤 했다. 미국에서 주는 옥수수빵도 배급받았다. 그러나 한국은 이후 한강의 기적을 이루며 배급받는 국가에서 탈피했다. 내가 보기에 너희들은 한국과 달리 50년 뒤에도 같은 상황이 될 것 같다. 기차밖에서 구걸하는 저 애들 중에는 뛰어난 애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기회를 주면 훌륭하게 커서 아프리카를 위해 기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을 위해서 너희들이 기여할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들 중 일부가 아프리카 전체를 구할 수 없어도 몇 명은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경비를 지원할테니 한번 시도해 보세요. 주변의 고아원이나 학교를 지원해서 바꾸어 보세요.  만약에 조그만 변화라도 보여준다면 내가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성공사례를 만들면 한국에서 너희들을 지원할 수 있도록 여러 사람들을 설득하겠다”고 말했다. 

그들은 나의 제안에 적극적으로 동의했다.

나는 다시 각자 객실로 돌아가 다른 사람들 의견들 들어보라고 한 후 다음날 다시 확인했다.

모두 동참하겠다고 해서 시도해 보기로 했다. 잠비아 루사카에서 만나 정식 미팅으로 시작해보자고 했다. 약속대로 나는 루사카 호텔에서 만나 1000달러를 주고 간혹 연락을 취하자고 했다. 

그들이 실제로 시행하기는 정말 어려울 것이며 지속하기도 힘들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아프리가 15개 나라에서 선발된 엘리트들이고 천주교 신부들이 되기 위해 교육받으러 온 이들이기에 그나마 기대를 걸고 지원했다. 

그들이 지속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나로 인해서 조금이라도 바뀐다면 나로서는 큰 의미가 있는 투자라고 생각했다. 
 
나는 다시 루사카를 떠나 짐바브웨 빅토리아폴로 향했다. 

빅토리아폴에는 함께 여행할 20명의 일행들을 만날 예정이었다. 그때까지 여행한 아프리카와는 완전히 다른 곳이었다.  유럽식 건물과 카페, 주택들이 있었고 수퍼마켓에는 물자가 풍부했다. 

우리는 멋진 엘리펀트 힐 리조터에 머물며 골프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빅토리아폭포 주변의 각종 액티브티도 경험했다.

그동안 접하지 못한 정말 멋진 순간이였다.  헬리콥터를 타고 빅토리아 폭포 주변을 내려다보고 잠비아강에서 3시간에 걸친 아찔한 래프팅, 최고 높이의 계곡에서의 번지점프, 사자와 산책, 빅토리아 폭포위에서 수영 등 오래 기억될 추억들을 만들었다.  
 

잠비아강에서의 선셋크루즈, 보츠와나 사파리여행은 이번 아프리카 여행의 핵심이었다.  그리고 매일 아침 사파리 같은 리조트 내 골프장은 환상적이었다. 

골프장의 필드에 원숭이, 영양, 멧돼지, 쿠두 등 다양한 야생동물과 해저드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악어 그리고 골프장 옆을 지나가는 코끼리들을 보는 재미는 또다른  멋진 경험을 선사했다.

여행의 일정 중에 고아원 방문과 후원행사가 포함돼 있어 우리는 이틀간 4시간 정도 그들과 함께하며 놀아주거나 간단한 봉사활동을 했다.  감동의 연속이었다. 여행사에서 4년간 이들을 지원해주었는데 매번 올 때마다 변화된 모습에 그동안 참석했던 사람들은 감탄을 했고 몇 명은 눈물을 흘렸다. 

나도 6000키로미터의 아프리카 여행에서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특히 작년에 우물설치비용을 지원해 주었는데 그로인해 가장 많이 변했다고 한다.

한 컵의 물로 아이들이 세수를 했는데 우물로 인해 아이들이 깨끗이 세수하고 옷을 자주 빨아 입어 아주 깔끔해졌고  농장을 만들어 채소를 키워 고아원 아이들이 먹거나 시장에서 판매할 수 있어 아이들이 너무 좋아한다고 했다. 

고아원 방문으로 아프리카 여행을 하면서 가슴속에 답답함과 고통이 모두 사라지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사례를 잠비아에서 만난 아프리카 청년과 공유하고 싶었다. 

짐바브웨에서의 좋은 기억을 뒤로하고 아프리카를 더 경험하고 싶다는 분들과 남아공 케이프타운으로 향했다. 

아프리카의 선진국, 남아공의 대표적인 역사의 도시, 케이프타운에서 깔끔한 다운타운과 항구 그리고 멋진 테이블마운틴과 12사도 봉오리를 구경하고  펭귄 서식지를 거쳐 희망봉에 가서 오랜 시간을 머물렀다. 

얼마나 많은 선원들이 희망봉을 기대하며 항해를 했던가, 얼마나 많은 사연이 긷들인 장소인가.  지금이야 편안한 여행이지만 몇 달 몇 년을 거쳐 여행하는 이들에게는 희망봉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가 있었겠는가 하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짐을 느꼈다. 
 

3박4일간 머문 케이프타운을 끝으로 아프리카 여행을 마무리하고 귀국했다. 귀국 하는 날 인천공항청사를 빠져나오면서 긴 여정을 되돌아보니 다시 여행을 시작하고 싶은 충동이 느껴졌다.

‘나도 전문 여행 마니아들처럼 여행 꾼이 다 돼 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프리카여행에서 돌아온 뒤로 계속 아프리카 청년으로부터 메일이 오고 있다. 그들이 고아원을 방문해 봉사활동을 하고 있으며 아이들과 놀아주면서 공부도 시키고 있다고 했다. 이런 활동을 앞으로 계속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여행사에서 아프리카 봉사여행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어 중단할 것 같다는 말에 내가 봉사여행을 맡아 활성화시키겠다고 했다.  더 많은 사람들을 동참시키겠다는 약속도 했다.

앞으로 짐바브웨 봉사여행에 잠비아 청년들을 초청해 더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고 더 많은 사람들이 기여하도록 하고 싶었다. 그들이 열정을 갖고 지속적으로 추진한다면 가능하리라 확신했다.

지난 여름 아프리카 여행은 나름 기승전결이 있는 의미 있는 여행이었다.

유럽과 중동의 화려한 여행에서 시작해 최악의 환경에 처해진 아프리카를 보며 절망감과 자괴감, 죄책감,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이를 극복하기 위해 아프리카 청년들과 대화하며 아프리카의 미래를 위해 조그만 도움을 주고자 노력했다.

기차에서 만난 미래의 천주교 사제들이 나와 약속한 대로 인근 고아원을 방문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고 하니 그 감동의 여운이 아직도 남아 있다.

아프리카 여행은 끝났지만 그들을 위해 내가 앞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사랑과 행복의 아프리카 여행이 아직도 내 마음 속에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패션저널&텍스타일라이프 ⓒ www.okfashi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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