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저널&텍스타일라이프:원유진 기자]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 한다’는 속담이 있다. 강자나 권력 등 수직관계의 대상에게 입은 피해를 수평적인 대상에게 푼다는 말이다. 이는 프랑스의 정신과 의사 프란츠 파농이 제시한 ‘수평 폭력’의 심리 기제와 일맥상통한다.
이런 수평 폭력의 심리는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발견할 수 있다. 유력 정치인의 병역면제 비리엔 관대하지만, 연예인이나 운동선수의 병역기피에는 분노하거나, 재벌의 부의 세습과 횡령에는 무감하지만, 노조의 파업에는 무조건 혐오를 드러내는 사람들이 많다. 회사 동료들에게 시달림을 받는 가장이 집에서 아내와 아이들에게 가정폭력을 행사하는 심리도 그렇다.
필자는 최근 태평양 건너 미국으로부터 한통의 제보를 받았다. 한국의 서너개 섬유회사들이 미국 LA 자바시장에서 영업 중인 봉제업체들을 상대로 무차별적인 ‘저작권’ 소송을 남발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들 섬유회사들은 저작권 보호가 철저한 미국에서 전문 변호사를 내세워 ‘걸리면 맞고, 아니면 말고’ 식의 소송과 동시에 적잖은 금액의 합의금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 소송의 피고가 해외의 거대 기업이 아닌 대부분 한인 교포들이 운영하는 영세 업체들이라는 데 씁쓸함이 더했다.
제보자는 “최근 한국의 패션시장 환경이 악화되면서 소송이 급증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전했다.
저작권은 당연히 보호받아야 하는 권리가 맞지만, 본래의 법 취지와 다른 의도라면 이는 수평 폭력과 다름 아니다.
올해부터 시행된 최저임금은 어떤가.
시급 기준 7530원. 언론은 연일 전년 대비 16.4% 인상된 금액, 17년 만에 최대 인상폭이라며 경제 위기를 우려하는 뉴스들을 쏟아내고 있다. 많은 패션 매장 점주들도 최저임금 인상을 두고 마진율을 낮게 책정한 브랜드 본사나 시장경제 활성화에 실패한 정책을 성토하기 보다 애먼 점원과 노동시장에 독설과 원망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올해 최저임금으로 주 40시간 일하는 노동자가 받게 되는 월급은 157만 원이다. 근무 시간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주말 근무를 해도 채 200만원이 되지 않는 금액이다. 이 급여 수준이 1인 독립가구 기준으로 정상적인 소비생활에 충분한 금액이라는 데 동의하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물론 최근 내수 섬유-패션시장의 환경은 근래 최악이라 할 만큼 좋지 않다.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 사드 배치, 대통령 탄핵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업계 저변에 누적된 스트레스가 심각한 수준이다. 하지만 수평폭력은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주변에 생체기만을 남길 뿐이다. 꼭 한 번 생각해볼 문제다. 나는 과연 여기서 얼마나 자유로운가. (패션저널&텍스타일라이프 ⓒ www.okfashi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