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M 매장 전경
[패션저널&텍스타일라이프:원유진 기자] 패션산업에 뿌리 깊게 자리잡은 갑질 횡포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매스티지 잡화 브랜드 ‘MCM’을 소유한 국내 패션기업 성주디앤디가 하도급업체 4곳에 10년이 넘도록 정액 마진제를 강요한 것이 전해지며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원가 대비 약 17%의 ‘정률제’ 마진을 적용하던 것을 2005년 일방적으로 제품별 마진을 고정시키는 ‘정액제’로 마진금액을 변경함으로써 그 차액에 따른 부채를 감당하지 못한 업체들이 부도에 이르게 된 때문이다.
정액제는 원청업체가 하청업체에 대금을 지급할 때 공임이나 판매가격의 변화와는 관계없이 제품별로 정해진 금액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경쟁 브랜드는 대부분 정률제를 택하고 있지만, 성주디앤디는 정액제를 강요했던 것. 매해 생산원가가 오르는데도 MCM이 하도급 업체에 지급한 마진은 변함이 없었다.
결국 12년간 정액제로 성주디앤디에 MCM 가방·지갑 등을 납품해 오던 에스제이와이코리아와 원진콜렉션 등 하도급업체들이 누적된 부채 탓에 지난해 2월과 4월 부도 처리됐다.
소비자들의 원성이 높아지자 김성주 성주그룹 회장은 대한적십자 총재직을 임기 만료 4개월여를 앞두고 지난 16일 사의를 표했다.
하지만 패션산업의 갑질 논란이 비단 MCM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매년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김상조)로부터 경고를 받거나 과태료를 부과받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실제 공정거래위는 지난 3월 아웃도어 브랜드 ‘마운티아’를 전개하는 동진레저(회장 강태선)에 불공정하도급 거래행위에 대한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9900만원을 부과했다. 동진레저는 41개 납품업체에 하도급대금 371억5000만원 상당을 어음으로 지급하면서 수수료 3억5000여만원을 지급하지 않았다.
‘핑’ ‘파리게이츠’ ‘팬텀’ 등 유명 골프웨어 브랜드를 운영하는 크리스에프앤씨(대표 우진석)도 지난해 12월 하도급대금을 지급하면서 어음할인료·지연이자 등을 주지 않아 공정위로부터 과징금 5억1100만원을 부과 받았다.
형지I&C도 하청기업에 어음을 주고 대금과 이자를 ‘늦장 지급’하다 적발돼 불공정하도급 거래행위로 지난해 7월 공정위의 경고를 받은 바 있다.
그렇다면 패션기업의 갑질 논란이 매년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업계 관계자들은 ‘브랜드→프로모션→원부자재’로 이어지는 국내 섬유패션 업계의 수직적인 스트림 구조를 꼽는다. 각 산업간 불공정한 결제 시스템이 고착화됐다는 분석이다.
예를 들어 원청 패션기업이 7개월 만기인 어음을 발행하게 되면, 원단업체는 지급 날짜까지 포함해 현금화에 최대 230여일이 걸린다. 그나마 결제가 정확히 이뤄진다는 전제다. 최근 패션산업의 업황이 악화되면서 하청업체들이 흑자부도 위험도 높아졌다. 이 같은 약점을 파고들어 일부 원청기업은 프로모션과 원부자재 업체에 무리한 납기를 요구하거나 애매한 불량을 트집 잡는 등의 방법으로 결제금액을 ‘후려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같은 잘못된 관행에 대해 업계의 한 관계자는 “원청기업의 도덕성과 오너의 상생의지를 요구하는 것 외에 수십년간 고착화된 패션산업의 구조적인 문제를 하루아침에 바로잡는 뾰족한 수가 없는 게 현실”이라면서도 “최근 임명된 김상조 공정위원장이 ‘불공정 하도급 관행을 단계적으로 집중적으로 점검하겠다’고 밝힌 만큼 합리적인 제도 마련과 처벌 강화 등 장기적인 개선 노력이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패션저널&텍스타일라이프 ⓒ www.okfashi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