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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생각-베트남 호치민
등록날짜 [ 2005년10월25일 00시00분 ]

베트남 전쟁시 위력을 발휘한 베트콩 땅굴

■ 취재(KOTITI 베트남시험연구소)차 베트남을 방문, 호치민(호찌민)의 여러곳을 견학했다. 그 가운데 전쟁승리기념관(전쟁박물관)과 지하땅굴이 인상적이였다. 전쟁기념관(과거 베트남 자유정부 대통령궁)은 베트남(베트콩)이 세계 최강국 미국을 상대로 전쟁에서 승리한 전쟁 기념품들이 대부분이였다.

지하 땅굴도 베트남 전쟁에서의 승리를 홍보하기 위한 전시물처럼 보였다. 땅굴을 둘러 보면서 베트콩이 어떻게 세계 최강국 미국을 상대로 승리할 수 있었는지 이해가 갔다.

땅굴 안에는 학교도 있었고 병원도 있었다. 땅굴  속에서 전쟁을 하면서 수년간 생활한 베트콩이 있다고 했다. 서울에서 대구까지의 길이에 땅굴이 놓여 있다는 말에 입이 벌어 졌다. 땅굴 속에서 정치를 하고 생활을 해 온 베트콩의 저력이 전율로 다가왔다. 도대체 이념의 무엇이 사람을 저토록 강인하게 했을까?.

물론 베트남 통일의 배경에는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라는 이념적 대결만이 아니라 오랜 외세의 침략에 대응해 온 베트남 민족의 저항 정신이 한 몫을 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베트남이 과거 중국과 프랑스에 이어 미국(한국도 포함)까지 자기네 땅에서 물리친 저력은 대단한 것이였음을 인정하기로 했다. 

어쨌든 두 진영의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키고 베트남은 공산주의로 통일됐다. 그런데 통일과 함께 공산당이 집권한 베트남은 수십년이 지난 지금 자본주의의 물결이 곳곳에 흐르고 있었다. 베트남을 통일시킨 공산당은 사회의 모든 부분을 장악했다.

통일 이전 자유진영 수도였던 사이공의 지명도 통일 이후 베트남 통일의 주역 호치민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사이공의 주요 분야도 베트콩 공산당들의 차지였고 수년간 남부 베트남에서는 자본주의 정부 시절 주요 인사들에 대한 피의 숙청도 이어졌다고 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을까 짐작이 갔다.

베트남에는 한국 군인들이 버리고간 라이 따이한(한국인과 베트남 여자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의 비애와 슬픔도 함께 하고 있었다. 남의 나라 전쟁에 뛰어들어 우리가 남긴 상처와 아픔이 아직도 치유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았다.

그 후 베트남의 주요 요직을 장악한 베트남 공산당 인사들은 부를  축적하면서 자녀들을 해외로 유학 시키는 등 자본주의 시대 인사들이 했던 관행을 그대로 답습했다고 한다. 이념을 앞세워 서로를 비판하고 죽이며 싸웠던 이들이 승리의 환호속에 도취돼 탐욕스런 인간의 내면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다.

'공산주의(사회주의)든 자본주의든 결국 인간의 탐욕은 똑같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베트남 공산당은 낙후된 베트남 경제를 회생시키기 위해 도이머이(새롭게바꾸다) 정책을 도입했고 베트남이 자본주의 상업체제를 수용하는 계기가 됐다. 자본주의 경제가 뿌리내린 베트남에서 이제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를 논하는 자체가 무의미해 보였다.

일부 베트남인들이야 통일에 큰 의미를 부여하겠지만 외국인인 나의 눈엔 통일전 베트남이나 통일후 베트남이나 별반 다르게 와 닿지 않았다.

자본주의 물결이 넘쳐나는 베트남을 돌아보며 나는 한동안 충격과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베트남이 공산주의(사회주의)가 확고하게 뿌리내린 사회였다면 오히려 충격은 덜 했을 것이다. 결국 이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그 많은 사람들을 이념이란 이름아래 희생시키며 통일을 했던 것인가? 

대학시절 한때 남북이 갈라진 우리나라의 현실과 그로인해 파생되는 여러가지 모순들을 보면서 통일이 무엇보다 우선돼야 한다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무참히 짓밟고 엄청난 희생을 치루며 무력으로 통일된 베트남이 정말 올바른 선택을 한 것인지 베트남 통일의 주역들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베트남인들이야 하나의 이념아래 하나의 국가로 통일된 것에 큰 의미를 두겠지만 이방인인 나의 머리 속에는 그 과정에 희생된 사람들의 모습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미래도 혹시나 그런 전쟁의 과정을 통해 통일의 길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도 들었다.

베트남의 현재를 보면서 우리나라(남과 북)가 가야할 길을 제대로 찾았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통일 이후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베트남 전쟁에서 희생된 사람들은 자본주의가 물결치는 베트남을 보면서 무슨 말을 할까? 나는 답을 찾지 못한 채 호치민을 떠났다.(조영준의 다이어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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